[김기찬 교수님 블로그에서 퍼옴..]

기업가정신에서 르네상스가 필요하다.
노동에서 상상으로 생각의 변화이다.
혁신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가 되어야 한다.
공감과 상상, 공정이 있는 문화에서 혁신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 나의 머리에
영국에 sympathy, 미국에 empathy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똘레랑스가 있다.
톨러런스(Tolerance)는 포용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똘레랑스. 극심한 분열의 나라 한국에는 똘레랑스가 없다.
극심한 정치 갈등, 극심한 사회 분열 이 답을 주는 나라는 프랑스이다.
유럽선진국들은 중세시대 인간성과 상상이 억압받았던 야만의 문화를,
똘레랑스로 상상의 자유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르네상스의 찬란한 문화를 만들었다.

르네상스의 핵심은 인간의 재발견이다. 휴매니티의 회복이다.
인간은 노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상하는 사람이다.
상상의 자유가 인간의 재발견이다.
이렇게 유럽선진국들은 ‘상상(imagination)’이 혁신(innovation)이 됨을 경험한 나라이다.

기업가정신에서 혁신을 강조하기만 한다면 인간성은 어떻게 될까?
혁신은 가죽을 벗기는 것이다. 이 아픔을 강요하는 단어이다.
결과적으로 혁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업가정신은
상상의 자유를 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은 노동에 대해 거부감이 큰 나라이다. 노동이 늘 싸움의 화두였다.
기업에서는 노동조합과 노동담당 임원이 가장 힘이 센나라이다.

한국에서 르네상스운동이 필요하다.
인간 재발견은 노동하는 사람에서 상상하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노동이라는 단어가 급격히 줄어들어야 한다.
대신 사람들이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혁신은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상상의 결과이다.
신기업가정신은 한국의 르네상스 운동이 되어야 한다.

프랑스에서 르네상스를 이해하기 위해 파리근교 르네상스 박물관을 방문했다.
내가 생각하는 르네상스는 ‘휴매니티’, 즉 인간성의 회복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 이전은 인간노동의 시대라면 르네상스이후는 인간 상상의 시대이다.

르네상스는 사람을 상상하게 한 것이다.
르네상스란 인간성회복이지만 결국 인간들이 상상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새 문화가 되었다.
르네상스이전의 중세는 인간성이 상실된 야만시대라면 14세기 이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르네상스. 즉 인간의 재발견은 상상과 톨레랑스이다.
그래야 상상의 자유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문화가 만들어진다.
문화는 인간의 행동이다.

르네상스가 만든 문화의 핵심은 노동문화에서 인간의 상상문화로의 전환이다.
Imagination(상상)이 Innovation(혁신)이 되고 혁신경험이 다시 상상하게 하는 나라이다.
상상이 선순환하는 곳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 찬란했던 르네상스 시대 때 지은 건물들과 성을 보면
건물 각각의 디자인이나 양식들은 상상이 만든 물건들이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지만 프랑스에서 르네상스의 절정을 맞이했다.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 파리에서 많은 예술의 대가들이 더 상상했고 그것이 꽃을 피웠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재뱔견이지만,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다.
로마제국이 힘의 문화였다면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고,
극심하게 갈등하는 야만시대가 되었다.
인간성이 말살되어 상상이 억압된 노동의 시대였다.
르네상스는 상상의 부활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이후 상상이 생산력이 됨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1768년 방적기 발명으로 시작된 산업혁명도 상상이 만든 혁신문화이다.

상상하게 하는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똘레랑스이다.
프랑스 톨레랑스는 본격적으로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등장했다.
당시 왕이었던 앙리 4세가 낭트칙령을 반포해 신교를 허용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광적인 구교도에게 앙리 4세가 암살당하게 되고,
루이 14세 때는 수십만 명의 신교도가 희생되었다.
이처럼 구교와 신교간 무자비한 갈등과 대혼란시기에 등장한 것이 톨레랑스다.
이후 톨레랑스는 자기와 다른 신앙과 사상, 행동 방식을 가진 사람을
용인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프랑스왕권은 루이 14세(재위 1643∼1715)가 완성한 절대주의 체제에 의해서
여전히 국왕친정과 신권이론(神權理論)을 받들고 국가와 인민 위에 군림을 계속하였다.
신권왕정 밑에서는 모든 국민이 단순히 국왕의 신하에 불과하다.
그 위에 소수의 귀족·성직자들만이 별도의 특권신분을 구성하고,
국민의 90%를 차지한 평민층의 근로와 납세에 기생하면서 우아하고 무위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모순은 처음부터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루이 16세(재위 1774∼92)의 정부는
미국독립혁명을 지원한 군사비 때문에 재정궁핍에 빠졌다[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참조).

시민 계층은 이같이 불합리한 구제도(앙시앵 레짐)를 깨부수고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오늘날 한국은 극심한 갈등의 나라, 관료제가 스타트 업을 옥죄는 나라가 되었다.
똘레랑스가 없는 나라의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토스의 이승건대표가 18세기 프랑스혁명의 구호 혁명,
비바리퍼블리카(공화국만세)를 사용한 의미가 아닐까?

르네상스이후 지식의 시대에서 행동의 시대로 바뀌었다.
우리의 세계는 ‘앎’의 세계와 ‘공감’의 세계 2개가 있다.
안다고 행동하지 않는다.
공감한 것에 행동이 일어난다.

‘안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비판하기 위해 활용한다.
공감은 행동을 여는 마음의 문이다.
프랑스에서 열정적 표현주의 반고흐의 마지막 인생의 현장에 있다.
스위스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다.
스위스의 평원에는 마을이 없고 깊은 산속에 성이 있고, 산속의 가파른 언덕에 마을이 있다.
프라이부르그에서 받은 인상이다. 전쟁을 피하기 위한 정치의 결과였다.
이것이 오늘날 중립국가를 선언한 배경이 아닐까 막연히 추측해본다.
프라이부르그 대학에는 학장실에만 조그마한 에어컨이 있다.
5월에 30도의 따가운 더위….. 수업중 대학교 창문을 열어놓고 있는 자연의 나라였다.

<지금까지 기업인들은 상상력이 생산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열정적 표현주의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의 마을에 갔다.
반고흐는 갤러리 세일즈맨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 되었던 인생이다.
프랑스 교외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반 고흐가 약 80점의 작품을 완성한 곳으로,
마을 자체가 대규모 야외 박물관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작품 배경의 오베르 시청 (The Town Hall at Auvers) 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있는 이곳에서 사진도 찍어보았다.

반고흐가 권총으로 자살하기까지 그림을 그리며 머문 라부 여관.
<반 고흐의 집 Maison de Van Gogh>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이 여관은
반 고흐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묵은 거처였다.
이제 방문객을 환영하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 되었다.

반 고흐의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Wheat Field with Crows)>의 배경이 된 밀밭도 걸어보았다.
고흐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 화폭 속 모습을 닮은 장소를 지나면,
그와 그의 동생이 묻힌 무덤까지 기업가정신에서 르네상스가 필요하다.
노동에서 상상으로 생각의 변화이다. 혁신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가 되어야 한다.
공감과 상상, 공정이 있는 문화에서 혁신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중심기업가정신 모델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