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신라 선덕여왕 편 뒤에 논평을 붙였는데 그 내용이 놀랍다.
그는 여왕에 대해 “암탉이 새벽에 운다” (서경), “암퇘지가 껑충거린다” (역경)라고 비하했다.
비록 중국 고서를 인용했지만, 여왕을 가축에 비유했다.
김부식 자신이 경주 김씨로 경주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여왕의 치세나 외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오직 여자라는 이유로 폄훼했다.
선덕여왕은 50세 전후에 즉위했는데, 당시 남편이 없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갈문왕 (왕족 및 왕의 근친에게 추봉한 왕)이 남편으로 나와있는데, 학자들은 두 명의 삼촌 중에서 한 명으로 보고있다.
여왕 즉위 때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시대로 보면, 여왕은 늙어서 왕위에 올랐고 건강도 좋지못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여왕은 정사를 거의 귀족들에게 맡겨놓고, 자신은 불공드리는 일에 전념했다.
그녀가 불교에 얼마나 심취했던지, 재위 16년 동안 창건한 절이 25개나 되었다.
당시 신라의 국력을 생각하면, 이렇게 많은 절을 창건한 것은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김부식은 “어찌 늙은 할미로 하여금 규방에서 나와 국가의 정사를 재단하게 하겠는가? 이러고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고 여왕을 힐난했다.
사실 여왕 재위 때에 백제가 신라 수도인 경주 앞까지 쳐들어 왔다는 기록을 보면, 신라가 위태로운 지경까지 몰려있었다는 사실을 알수있다.
그렇지만 김부식은 이렇게 많은 여왕의 실정을 비판하지 않고, 오직 여성이라는 점만 강조해 비평하고 있다.
또 우리가 알고있는 여왕의 총명함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에서 보내온 모란꽃 그림에 벌이나 나비가 같이 그려져 있지않아 꽃은 향기가 없다고 말한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란꽃은 향기가 있다.
김부식이 굳이 틀린 사실을 역사 기록에 넣었는데, 이는 여왕의 멍청함을 알리려고 한 것인지, 그냥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수록한 것인지 의도를 알수없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신라 최고위직인 상대등에 임명한 비담이 일으킨 반란으로 일어난 내전 중에 사망했다.
여왕이 죽은지 500년이 지나, 김부식에 의해 “암탉”과 “암퇘지”라는 가축에 비유됐다.
그래도 여왕은 자신의 조카이자 6촌 동생인 김춘추와 명장 김유신이 옆에서 충실히 보좌한 덕분에, 잘한 것이 거의 없는 가운데도 나라가 망하지 않고 보전할 수 있었다.
김부식은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에서 공자의 제사를 주장한 유학자였고, 대외 관계에서 현실적인 이해를 중시한 외교노선과 세 차례나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외교관이었다.
또한 문장에도 뛰어난 학자였고, 묘청의 난을 진압한 장군이었고, 삼국사기를 편찬한 역사가였다.
이렇게 뛰어났던 인물이 9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모든 업적은 여성 비하 문제로 묻혀버리고, 여성을 그것도 여왕을 가축에 비유한 행위만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