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에서 빛난 아르헨티나의 자부심, 토리노 자동차 이탈리아에서 헌정 행사
탄생 60주년을 맞아 약 100명의 애호가들이 피닌파리나와 토리노 시내를 가득 메웠다.
이날 특별 게스트로는 오라시오 파가니(Horacio Pagani)가 참석해 아르헨티나의 상징적인 자동차를 기념하는 자리에 함께했다.
아르헨티나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는 그들의 열정을 잘 표현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자동차 경주에서 포드와 쉐보레의 대결이 리버 플레이트와 보카 주니어스의 대결이라면, 토리노(Torino)는 언제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과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9월 24일 목요일, ‘네 바퀴를 단 아르헨티나의 국기’와도 같은 토리노가 자신의 역사가 시작된 바로 그 장소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전설적인 자동차 디자인 회사 피닌파리나(Pininfarina)였다.
이번 행사는 아르헨티나 자동차 산업에 깊은 족적을 남긴 토리노 탄생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같은 헌정 행사를 추진한 사람은 아르헨티나 출신 디자이너 도메니코 리(Domenico Lee, 한인 2세)다. 그는 약 2년 전 같은 피닌파리나 시설에서 열린 페라리 테스타로사(Ferrari Testarossa) 헌정 행사를 본 뒤 토리노를 위한 행사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리는 “모든 것은 11년 전 시작됐습니다.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토리노에 왔는데, 한 교수가 피닌파리나에 가서 토리노 관련 자료를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고 계속 권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테스타로사 40주년 행사를 본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들었고, 토리노 60주년에는 반드시 이런 행사를 열겠다고 결심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행사 취재를 위해 참석한 영국 거주 아르헨티나 언론인이자 자동차 복원 전문가인 가브리엘 데 메우르빌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 감동적이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토리노 차량 행렬이 피닌파리나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에는 순수한 아르헨티나의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파가니의 지원과 과거 역사의 복원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피닌파리나의 자체 자료실에서조차 IKA 토리노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다.
도메니코 리는 웃으며 “그들은 이 차가 어떤 자동차인지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구글에서 검색했는데 ‘엘 에테르나우타(El Eternauta)’ 관련 내용만 나왔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이탈리아 디자인 회사 피닌파리나의 문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슈퍼카 제작자 오라시오 파가니였다.
행사 주최자인 리는 “오라시오에게 이 계획을 이야기하자마자 그는 즉시 좋다고 대답했고 자신의 자동차까지 행사에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가 저를 지원해준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라시오 파가니가 참석한다고 말하자 피닌파리나 측에서도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행사는 오전 9시 30분 차량들이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당초 피닌파리나 측은 약 20명 정도의 소규모 방문단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반응은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다. 90명이 넘는 토리노 애호가들이 현장을 가득 메웠다.
이번 행사를 위해 유럽 각지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도 애호가들이 특별히 찾아왔다.
또한 세계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유명 인사들도 참석했다. 투쿠만 출신으로 맥라렌(McLaren) 디자이너를 지낸 에스테반 팔라소(Esteban Palazzo)와 마르델플라타 출신으로 현재 마세라티(Maserati)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파블로 다고스티노(Pablo d’Agostino)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와 함께 토리노 8대가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직접 도로를 달려 행사장에 도착했다.
대부분 TS와 TSX 모델이었으며, 여기에 피아트 128 IAVA와 포드 페어레인(Ford Fairlane) 같은 클래식 자동차들도 동행했다.
참가자 상당수는 ‘Torinos en Europa(유럽의 토리노)’와 ‘Clásicos Argentinos en Europa(유럽의 아르헨티나 클래식카)’ 모임을 대표해 참석했다.
이날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차량은 단연 오라시오 파가니가 소유한 흰색 토리노 380W였다.
파가니는 직접 이 차량을 운전해 모데나(Modena)에서 행사장까지 왔다. 이 차량은 리카르도 세시오라(Ricardo Zeziola)가 복원한 것이다.
기술적인 새로운 사실들과 벅찬 감동
피닌파리나 내부에서 진행된 기술 관련 강연에서는 토리노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이 공개됐다.
특별 참석자로 알프레도 스톨라(Alfredo Stola)가 자리했다. 그는 토리노의 최초 1대1 크기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던 유명 모델 제작 가문의 직계 후손이다.
그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스톨라(Francesco Stola)는 이후 자동차 차체 프레스 금형 제작의 기반이 된 실물 크기 모델을 직접 만든 인물이었다.
도메니코 리는 미국의 램블러 아메리칸(Rambler American)의 차체 디자인과 토리노에서 이루어진 디자인 변경 사항을 시각적으로 비교해 설명했다.
미국차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토리노만의 유럽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어떤 외관상의 변화가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토리노의 원래 디자인을 누가 담당했는지를 놓고도 이야기가 오갔다. 그 디자인은 상당 부분 전설적인 디자이너 알도 브로바로네(Aldo Brovarone)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파가니 역시 직접 연단에 올라 감동과 향수가 가득 담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도메니코 리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오라시오가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토리노는 그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자동차입니다. 그는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집착과 1960년대 토리노가 보여줬던 뛰어난 제작 품질에 대해 매우 열정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라고 전했다.
토리노 시내를 누빈 카퍼레이드
발표 행사가 끝나고 기념 포스터가 전달된 뒤, 토리노 차량들은 일제히 시동을 걸었다.
차량들은 긴 행렬을 이루며 토리노 시내를 가로질러 국립자동차박물관으로 향했다.
토리노 시 당국의 특별 허가를 받은 차량들은 박물관 앞 광장에 나란히 주차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클래식 자동차들이 한꺼번에 등장하자 현지 주민과 관광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참가자들은 이후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친목을 다졌고, 박물관 가이드 투어에도 참여했다.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 60년.
토리노는 여전히 아르헨티나 자동차 애호가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그리고 이번에는 대서양을 건너 자신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자리를 당당하게 되찾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