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경제에서 달러의 역할
글쓴이: 도밍고 카발로
작성일: 2026년 7월 31일
밀레이 대통령이 발표한 중앙은행 조직법 개정안에는 1992년에 승인된 제도를 다시 살리는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담겨 있다. 다만 과거 법에는 없었던 매우 세밀하고 명확한 규정들이 새로 포함되었다.
첫째, 통화정책의 유일하고 배타적인 목표는 페소화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재정적자를 화폐 발행으로 조달하는 것을 금지한다.
또한 이러한 두 가지 원칙을 위반하도록 만드는 정치적 행위에 대해 형법상 책임을 묻도록 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개정안은 이어서 이른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정의하고 보호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시장경제를 운영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통화정책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경제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해 온 사항이다.
이번 개혁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목표로 하는 것이 대선 당시 대통령이 약속했던 것처럼 페소와 달러 사이의 자유로운 경쟁이라면, 이번 개혁에는 두 가지 추가 규정이 보완되어야 한다.
첫째, 달러를 페소와 동일한 성격과 효력을 갖는 법정통화로 선언해야 한다.
둘째, 자본 이동에 대한 제한을 도입하는 것을 금지해야 하며, 이 금지 규정을 위반하는 사람에게는 재정적자를 화폐 발행으로 조달한 사람과 동일한 제재를 적용해야 한다.
달러를 법정통화로 인정하는 규정과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외환 규제 없이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함께 마련된다면, 이번 개혁은 효과적인 통화경쟁 제도의 법적 기반이 될 것이다.
통화·외환·금융 개혁을 둘러싼 논의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시행되었던 통화·외환·금융제도의 입법적 틀을 설계한 핵심 인물인 오라시오 리엔도는, 안타깝게도 2002년 이후 파괴된 그 제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러한 개혁에는 적절한 법적 기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나에게 확신시켰다.
그는 최근 『안정된 화폐』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했다. 나는 그 책의 서문을 쓰는 영광을 누렸지만, 아직 정식으로 출판되지는 않았다.
1991년 당시 오라시오 리엔도의 주도력과 역사적 지식, 헌법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우리가 태환제도를 시행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이나 미래에도 그와 같은 지적 뒷받침 없이는 안정성을 보장하고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통화·은행·금융제도로 나아가기 어렵다.
새로운 중앙은행 조직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행정부와 의회가 오라시오 리엔도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의 제안을 고려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나는 오라시오 리엔도에게 그의 책을 서둘러 출판해 달라고 촉구하고 싶다. 이 책은 법을 제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경제제도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는 모든 경제·사회 주체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통화경쟁과 태환제도
나는 밀레이 대통령이 ‘달러화’를 이야기했을 때 그가 염두에 둔 개념이 통화경쟁이라고 항상 해석해 왔다.
그가 페소를 없애고 달러로 대체하자고 주장한 것은, 자국 통화를 포기한 국가들인 파나마, 엘살바도르, 에콰도르와 유로화 사용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또한 홍콩, 발트 3국, 불가리아처럼 자국 통화의 발행을 매우 엄격한 규칙에 묶어 놓은 국가들의 경험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단 10년 동안만 유지되었던 아르헨티나 태환제도의 경험이기도 했다.
1990년대 아르헨티나의 태환제도는 통화경쟁 제도였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가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제기했지만 끝내 충분한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아르헨티나의 태환제도는 10년 동안 시행된 뒤 왜 끝났습니까?”
이 질문은 참석자들을 당황하게 했고, 명확한 답변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 장면을 통해 IMF 총재가 아르헨티나의 미래에 대해 어떤 우려를 갖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보고서에서 불가리아의 안정화 경험을 분석하기로 했다. 불가리아는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출신국이며, 1997년에 통화·외환·금융 개혁을 시행했다. 이 개혁은 성공적이었으며 불가리아가 유로화에 가입할 때까지 29년 동안 유지되었다.
아르헨티나는 불가리아의 안정화 경험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먼저 약간의 역사적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가 1991년 태환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한 이후, 다보스 연례회의에서 아르헨티나의 경험은 중요한 논의 대상이 되었다.
소련으로부터 막 독립한 발트 국가들은 아르헨티나의 경험을 참고해 금본위제 시대의 제도와 유사한 이른바 ‘통화위원회’, 즉 커런시보드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 IMF는 이러한 제도를 권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1995년 멕시코발 ‘테킬라 위기’의 영향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발트 국가들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IMF는 일부 동유럽 국가들의 통화·금융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아르헨티나식 제도를 권고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나라가 불가리아였다.
당시 불가리아 당국에 제시된 근거가 아르헨티나에서 그 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는 점을 나는 직접 알고 있다.
불가리아는 나의 경제부 차관이었던 후안 야크에게 불가리아 중앙은행 총재직을 맡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후안 야크는 이를 수락하지 못했지만, 저명한 경제학자 알프레도 카나베세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전문가들이 자문역으로 불가리아에 갔다.
IMF가 처음에는 아르헨티나의 태환제도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아르헨티나의 경험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도 나는 직접 알고 있다.
1998년 8월 러시아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옐친 대통령에게 아르헨티나가 1990년대 초 위기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참고하라고 권고했다.
그 조언의 결과로 나는 모스크바 방문 초청을 받았고, 러시아에서도 루블화를 위한 커런시보드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개혁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개혁이 옐친 대통령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의 권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가리아의 경험에 관한 세부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ChatGPT에 설명을 요청했다. 그 답변이 정확하다고 판단해 이 보고서의 부록으로 첨부했다.
부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불가리아의 경험은 성공적이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불가리아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영구적으로 제거했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으며, 아르헨티나가 1995년과 1999년부터 2001년 사이 겪었던 것과 유사한 외부적 요인에서 비롯된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또한 유로화 도입을 위한 길을 닦았으며, 현재는 유로화 체제 안에 속해 있다.
그러나 여러 개혁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모든 경제활동인구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실업률은 30%가 넘던 수준에서 약 3%까지 낮아졌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유럽의 다른 국가로 이주했다.
경제활동인구의 약 25%가 해외로 이주했다.
물론 경제안정화를 포기했다고 해서 일자리 부족 문제가 완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더욱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거시경제 개혁뿐 아니라 교육, 직업훈련, 기업가정신 장려에도 중점을 두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 역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분야이다.
불가리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현재 아르헨티나의 어떤 현실을 우려하고 있을까?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노력이 1990년대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의 노력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 정부도 공공지출 축소, 재정적자 제거, 무역과 투자에 대한 경제 개방, 규제 완화, 민영화, 왜곡을 초래하는 세금의 철폐를 추진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개혁의 속도뿐이다. 특히 통화개혁과 왜곡적 세금의 철폐 속도에서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측면에서 나타난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1990년대의 경제계획이 10년 후 붕괴했던 일이 미래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먼저 더 시급한 질문에 답하고 싶다.
태환제도의 경험은 물가상승률의 하락이 강력한 경기회복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가?
내가 IMF뿐 아니라 국내 비판자들에게도 제시하고 싶은 답은 통화개혁이 재정개혁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앙은행 조직법 개정에 관한 의회 논의가 아르헨티나의 국내외 신용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통화·금융·외환제도를 제도화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개혁이 단순히 10년 동안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지속되도록 하려면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고 확대해야 한다.
모든 단기적 경제정책에 대해 합의할 필요는 없더라도, 적어도 국가 경제조직의 구조적 특징에 대해서는 합의가 필요하다.
그 경제조직은 아르헨티나 헌법에 담긴 알베르디의 원칙과 부합해야 한다.
또한 노동을 위한 교육, 노동력의 직업훈련, 지역 기업가정신의 장려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시장만으로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부록: 1997년 불가리아 통화개혁—초인플레이션에서 유로화 도입까지
불가리아는 금융위기와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뒤 동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통화개혁 가운데 하나를 시행했다.
불가리아의 경험은 아르헨티나의 통화제도 논의에 매우 구체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국가라도 재량적 정책을 검증 가능한 규칙으로 대체하고, 재정·은행·제도 개혁으로 그 규칙을 뒷받침한다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태환제도가 반드시 경기침체, 실업 또는 평가절하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보여 준다.
그러나 불가리아의 경험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커런시보드 제도는 마법과 같은 해법이 아니었으며, 이후 경제성장을 설명하는 유일한 요인도 아니었다.
그 제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재정규율, 은행제도의 정상화, 개혁의 연속성, 그리고 서로 다른 정치성향을 가진 정부들이 공유한 하나의 정치적 목표 덕분이었다.
그 목표는 불가리아의 유럽연합 가입과 궁극적인 유로화 도입이었다.
이 점이 불가리아 사례에서 진정으로 독특한 특징이다.
1997년에 승인된 개혁은 일시적인 해결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개혁은 새로운 통화질서의 기초가 되었으며, 29년 후 불가리아가 유럽 통화동맹에 가입하면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개혁을 가능하게 한 위기
1996∼1997년의 위기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이 실패한 결과였다.
수많은 국영기업이 계속 적자를 내고 있었고, 상당수 국영은행이 이들 기업을 지원하고 있었다.
전체 대출의 60% 이상이 상환되지 않는 상태였다.
은행들은 지급불능 상태의 기업들에 계속 대출을 갱신해 주었고, 불가리아 중앙은행은 다시 그 은행들에 자금을 공급했다.
그 결과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
기업의 손실은 은행의 손실로 전환됐고, 은행의 손실은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로 이전됐다.
중앙은행은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화폐를 발행했다.
재정규율의 붕괴, 은행규율의 붕괴, 통화규율의 붕괴는 사실상 동일한 문제의 서로 다른 모습이었다.
1996년 불가리아의 국내총생산은 10.9% 감소했고, 12개월 누적 인플레이션은 300%를 넘어섰다.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의 120% 이상에 달했다.
외환보유액이 고갈되면서 불가리아는 한 달치 수입대금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1997년 초에는 위기가 초인플레이션으로 발전했다.
3월에는 물가상승률을 연율로 환산한 수치가 2,000%를 넘어섰다.
자국 통화로 표시된 임금, 연금, 저축의 가치는 사실상 완전히 파괴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권한 이반 코스토프 정부는 또 하나의 재정계획이나 새로운 통화긴축 약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불가리아 중앙은행은 이미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정부에 자금을 공급하고 지급불능 은행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해 온 중앙은행의 권한을 박탈해야 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커런시보드, 즉 통화위원회 제도를 도입했으며, 이 제도는 1997년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환율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통화발행 규칙
새 제도는 환율을 독일 마르크 1마르크당 구 레프화 1,000레프로 고정했다.
그러나 개혁의 핵심은 특정 환율을 선택한 데 있지 않았다.
결정적인 변화는 불가리아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와 권한을 근본적으로 재편한 것이었다.
불가리아 중앙은행은 세 개 부문으로 나뉘었다.
발행부, 은행부, 은행감독부였다.
발행부는 모든 대외자산을 보유하며, 통화부채 전액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유지해야 했다.
보장 대상에는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 상업은행의 지급준비금, 정부 예금이 포함됐다.
화폐 발행은 더 이상 경제정책에 따른 재량적 결정이 아니었다.
불가리아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을 취득하는 경우에만 레프화를 발행할 수 있었다.
외화가 유입되고 자국 통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본원통화가 확대될 수 있었다.
외환보유액이 빠져나가면 본원통화도 자동적으로 축소돼야 했다.
이 과정은 자동적으로 작동했으며 발행부의 주간 대차대조표를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
법률은 중앙은행이 정부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을 금지했다.
또한 공공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채를 매입하거나 지급불능 금융기관을 구제하기 위해 화폐를 발행하는 것도 금지했다.
유동성 지원은 금융시스템 전체에 위험이 발생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했다.
그 경우에도 지급능력이 있는 은행에만 지원할 수 있었으며, 은행부의 잉여재원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불가리아의 제도는 완전히 정통적인 형태의 커런시보드는 아니었다.
중앙은행은 은행감독 기능을 계속 유지했고, 지급준비율을 부과했으며, 제한적인 범위에서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유연성은 은행위기 직후에 개혁이 시행됐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포함됐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 규정도 핵심 원칙을 훼손하지는 않았다.
불가리아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을 통해 재정적자나 민간 부문의 손실을 보전할 수 없었다.
커런시보드 제도와 일반적인 고정환율제도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일정한 환율을 발표한 뒤 외환보유액이 부족해지거나 정책의 우선순위가 변하면 그 환율을 포기할 수 있다.
반면 커런시보드 제도에서는 환율, 외환보유액에 의한 통화 보장, 화폐발행 제한이 하나의 통합된 법적 구조를 이룬다.
그 목적은 정해진 규칙을 변경할 때 발생하는 정치적·제도적 비용을 높이는 것이다.
커런시보드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통화개혁은 매우 강력한 재정·은행 개혁과 함께 시행됐다.
불가리아 당국은 존속이 불가능한 은행들을 폐쇄하고 건전성 규제를 강화했으며, 국유은행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불가리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무렵에는 모든 은행이 민영화돼 있었다.
국영기업 민영화도 가속했고, 지급불능 상태의 경제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보조금을 폐지했으며, 무역과 외국인 투자에 경제를 개방했다.
IMF의 지원은 외환보유액을 회복하고 제도 전환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성공이 단순히 외부 자금 지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성공의 핵심은 재정·기업·은행 부문의 손실이 최종적으로 화폐 발행으로 전환되는 통로를 차단한 것이었다.
1999년 7월 5일 불가리아는 화폐에서 0 세 개를 제거했다.
신 1레프 = 구 1,000레프
화폐단위 변경은 두 번째 통화개혁이 아니었다.
이미 안정이 회복된 뒤 회계 처리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시행한 조치였다.
구 1,000레프가 독일 마르크 1마르크와 같았기 때문에 화폐단위 변경 이후에는 신 1레프가 독일 마르크 1마르크와 같아졌다.
독일 마르크가 유로화로 대체되면서 환율은 다음과 같이 정해졌다.
1유로 = 1.95583레프
이 환율은 2026년 유로화 도입 때까지 변경되지 않았다.
경제안정에서 경제성장으로
초기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1998년 평균 인플레이션은 22%로 낮아졌고, 12개월 누적 인플레이션은 연말 기준 약 1%까지 떨어졌다.
금리가 하락했고, 외환보유액은 회복되기 시작했으며, 예금이 은행시스템으로 돌아왔다.
국내총생산은 1996년 10.9%, 1997년 6.9% 감소했지만, 1998년에는 3.5% 성장했다.
경기회복은 정부가 결정한 통화팽창의 결과가 아니었다.
통화 사용의 정상화, 계약관계의 정상화, 투자 회복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커런시보드는 화폐 발행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지 않았다.
통화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킴으로써 화폐 수요가 다시 나타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불가리아 경제는 연평균 약 6% 성장했다.
외국인 투자가 크게 증가했고, 실업률은 하락했다.
공공부채는 2000년대 초 국내총생산의 약 75% 수준에서 2008년에는 약 14%까지 감소했다.
불가리아는 2007년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이러한 결과는 태환제도가 반드시 경제성장을 방해한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 준다.
불가리아는 평가절하나 팽창적 통화정책을 사용하지 않고도 성장했고, 투자를 유치했으며, 실업률을 낮췄다.
그러나 이 제도가 모든 불균형을 제거했다고 결론 내리는 것도 잘못이다.
경제성장이 가장 강했던 시기에 대규모 자본 유입이 신용, 건설, 부동산 가격, 임금의 상승을 촉진했다.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의 20%를 넘기도 했다.
커런시보드는 재량적인 화폐 발행은 막을 수 있었지만, 민간 부문의 과도한 차입이나 예외적으로 큰 자본 유입으로 인한 실질환율 절상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러한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통화안정은 불안정의 한 가지 원인을 제거하지만 경기순환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며 금융감독을 대신할 수도 없다.
2008∼2009년의 시험
세계 금융위기는 커런시보드 제도가 초기에 겪었던 위기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시험이었다.
자본 유입이 중단되고 수출이 감소했으며, 투자와 신용이 위축됐다.
2009년 국내총생산은 3% 이상 감소했고 실업률은 상승했다.
그러나 불가리아는 평가절하를 하지 않았고, 커런시보드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금융시스템 전체의 은행위기도 겪지 않았다.
외부자금 조달이 급감했지만 외환보유액을 고갈시킬 정도의 대규모 인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낮은 공공부채와 개선된 은행권의 지급능력은 1996년에는 없었던 안전 여유를 제공했다.
그러나 조정에는 비용이 따랐다.
평가절하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국내수요, 수입, 투자가 감소하고 노동비용이 조정되는 방식으로 경제가 균형을 되찾았다.
이는 일종의 내부적 평가절하였다.
커런시보드는 경기침체 자체를 막지 못했다.
다만 경기침체가 또 다른 통화위기와 은행위기로 발전하는 것을 막았다.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발생하지 않은 일도 중요하다.
위기가 닥쳤을 때 화폐 발행으로 경기회복에 자금을 공급하거나 고정환율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면서 충분한 지지를 얻은 정치세력은 나타나지 않았다.
커런시보드는 특정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사회 다수가 받아들이는 제도로 자리 잡고 있었다.
2014년 은행위기는 금융감독과 제도의 질에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 사건도 금융시스템 전체로 확산되지는 않았고, 커런시보드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지도 않았다.
이 제도는 코로나19 대유행과 2022∼2023년 유럽 에너지·인플레이션 충격도 견뎌 냈다.
재정규율과 경제적 수렴
통화정책에 대한 제약으로 인해 경기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은 재정정책이었다.
이는 정부가 충분한 재정적 안전 여유를 유지하도록 강제했다.
27년 동안 커런시보드를 운영하면서 불가리아는 13개 연도에 재정흑자를 기록했으며, 공공부채를 유럽연합 기준인 국내총생산의 60%보다 훨씬 낮게 유지했다.
2024년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의 23.8%로, 유럽연합에서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었다.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소득은 2006년 유로존 평균의 약 35%에서 2025년 60% 이상으로 상승했다.
2024년 세계은행은 불가리아를 고소득 국가로 재분류했다.
2025년 국내총생산은 3.1% 성장했고 평균 실업률은 3.5%였다.
평균 인플레이션은 불가리아 국내 물가지수 기준 4.6%, 유럽 국가 간 비교에 사용하는 조화소비자물가지수 기준 3.5%였다.
따라서 커런시보드가 불가리아의 인플레이션을 유로존과 완전히 동일한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임금과 물가의 수렴, 외부 충격, 재정정책은 계속해서 국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쳤다.
경제안정도 통화제도의 범위를 넘어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1990년대 이후 약 100만 명의 불가리아 국민이 해외로 이주했으며, 전체 인구는 약 850만 명에서 64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지역 간 격차, 높은 불평등, 부패, 법치주의 문제도 계속 존재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들이 통화개혁의 성공을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통화개혁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명확하게 보여 줄 뿐이다.
건전한 통화는 저축을 보호하고 신용을 활성화하며 경제적 계산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건전한 통화만으로 정치제도를 만들거나 생산성을 높이거나 지역 간 불평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
유로화 도입
불가리아는 2020년 유럽환율메커니즘인 ERM II와 유럽중앙은행의 긴밀한 은행감독 협력체계에 가입했다.
2026년 1월 1일 유로화를 공식 도입해 유로존의 21번째 회원국이 됐다.
유로화 전환은 20년 이상 유지되어 온 동일한 환율로 이루어졌다.
1유로 = 1.95583레프
따라서 환율 자체의 변경은 없었다.
불가리아는 이미 1997년부터 재량적인 화폐 발행과 평가절하를 경제정책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유로화 도입 전에도 상당한 비율의 예금과 대출이 유로화로 표시돼 있었으며, 공공부채의 약 70%도 유로화로 표시돼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로화 가입은 커런시보드 도입과 함께 사실상 시작된 통화통합을 완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화폐의 이름만 바꾼 것은 아니었다.
불가리아 중앙은행은 유로시스템의 정식 구성원이 됐으며, 중앙은행 총재는 유럽중앙은행 정책위원회에 참여하게 됐다.
불가리아 은행들은 유로시스템의 유동성을 이용할 수 있게 됐고, 법률 개정으로 고정환율이 바뀔 수 있다는 잔여 위험도 사라졌다.
유로화 도입은 커런시보드 제도의 종료를 의미하기도 했다.
불가리아는 더 이상 유럽의 통화정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라가 아니라, 그 통화정책의 수립에 참여하는 나라가 됐다.
이 보고서 작성 시점에는 유로화 가입의 장기적 결과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만 전환 과정이 질서 있게 진행됐고, 환율을 변경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의 자료에 따르면 물가에 미친 영향도 제한적이고 일시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불가리아의 경험이 입증하는 것과 입증하지 않는 것
불가리아의 통화제도는 아르헨티나의 태환제도와 완전히 동일하지 않았다.
레프화는 계속 법정통화로 사용됐으며, 불가리아 중앙은행의 제도적 구조는 일부 측면에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보다 더 엄격했다.
특히 발행부는 국내 국채를 통화부채의 담보자산으로 보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제도는 하나의 핵심 원칙을 공유했다.
자국 통화는 안정된 환율로 교환될 수 있어야 했으며, 통화 발행은 외환보유액의 보유 정도에 종속돼야 했다.
두 제도 모두 통화정책의 재량성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법적 규칙으로 대체하려 했다.
불가리아의 경험만으로 모든 커런시보드 제도가 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또한 아르헨티나가 2002년 태환제도를 포기하게 된 원인을 둘러싼 논쟁을 불가리아의 경험만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 극단적인 해석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잘못된 해석은 태환제도가 반드시 경제성장을 방해하며 결국 평가절하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불가리아는 성장했고, 실업률을 낮췄으며, 외부 위기를 극복했고, 유로화에 가입할 때까지 고정환율을 유지했다.
두 번째 잘못된 해석은 통화법 하나만 제정하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불가리아의 통화규칙은 은행제도의 정상화, 재정규율, 외환보유액 축적, 유럽과의 경제적·제도적 통합이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역대 정부들이 위기에 대응할 때 다시 화폐 발행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환율제도의 기술적인 운영방식이 아니라, 그 제도를 둘러싼 제도적 기반의 구축에 있다.
불가리아는 정해진 규칙을 포기할 때 치러야 하는 정치적 비용을 점차 높였다.
처음에는 통화규칙을 법률에 포함시켰다.
그다음에는 유럽연합 가입과 연결했다.
이후에는 ERM II 및 유럽 은행동맹 가입과 연결했다.
마지막으로 유로화를 도입했다.
통화안정은 경제개발의 출발점이지 완전한 개발계획 자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출발점이 없었다면 불가리아가 신용을 회복하고, 투자를 유치하며, 부채를 줄이고, 유럽과의 경제적 격차를 좁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이 불가리아의 경험이 주는 핵심적인 교훈이다.
정책 담당자의 재량을 명확한 규칙으로 대체하면 신뢰는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신뢰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더 어려운 조건이 필요하다.
재정·은행·정치제도가 그 규칙을 위반하는 비용을 규칙을 지키는 비용보다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
불가리아는 이러한 조건의 조합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초국가적 통화체제에 완전히 통합될 때까지 이를 유지했다.
각주 1
나는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의 대선 캠프가 주최한 인플레이션 관련 강연에서도 이러한 견해를 주장했다.
해당 강연은 밀레이 대통령의 저서 『인플레이션의 종말』에 수록됐다.
내 강연의 제목은 ‘중앙은행이 존재하는 통화경쟁’이었다.
그보다 앞서 알베르토 베네가스 린치가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는 통화경쟁’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