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9의 풍경
글 : 이기은

살벌하다.
40도에 가까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날씨에서 살다가 영하 10도 아래의 서울 거리로 던져진 나에게, 추위는 더 이상 계절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서울은 변신이 빠르다.
늘 낯설다.
바람이 불면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 채 길을 걷게 된다.
종로 거리는 가게로 가득하지만, 일부 약국을 제외하면 손님은 거의 없어 썰렁하다.
그런데 이런 추위 속에서도 가게 밖으로 줄이 늘어선 곳이 두 군데 눈에 띈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면 바로 마주치는 가게 하나, 빌딩 몇 개를 지나 내가 묵고 있는 숙소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또 하나.
두 곳 모두 로또를 파는 가게다.
흥미가 일었다.
아침에 길을 나설 때마다 양쪽 가게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보았다.
날씨에 따라 줄은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했지만 비율은 늘 비슷했다.
1등 당첨자가 17명이라고 크게 써붙인 가게에는, 1등 당첨자가 9명이라고 적어놓은 가게보다 항상 세 배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았다.
9명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한 가게의 당첨 확율은, 17명의 당첨자를 배출한 가게보다 63%가 높았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17명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한 가게로, 어미 닭을 찾는 병아리처럼 몰려들었다.
서울 끝자락에 사는 친구에게 이런 로또 열풍에 대해 말했더니, 자기 동네의 로또 명당으로 알려진 가게는 세 들어 있던 빌딩을 매입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에 문을 열 때부터 저녁에 닫을 때까지 사람들이 저렇게 밀려든다면, 판매액의 5% 수수료가 얼마나 큰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빌딩을 사고도 남겠다는 계산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로또 열풍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줄을 선 사람들 중에서 남성이 더 많았지만, 젊은 여성들도 적지 않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로또는 전 국민의 게임이 되었다.
복권은 흔히 ‘가난한 사람들의 세금’이라 불린다.
이는 구조적 불공정과, 이루기 어려운 희망을 상품으로 파는 시스템을 비판하는 말이다.

오늘도 로또 가게 앞을 지난다.
세 번의 추첨이 있었지만 당첨자 숫자는 변치않고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2등 당첨자 수도 그대로다.
양쪽 가게 모두 1등은커녕 2등조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추운 날씨에 떨면서 줄을 섰던 사람들의 희망은 고문처럼 끝났다.
눈이 내려 얼어붙은 길 끝자락에, 그들의 희망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흩어져 있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찬바람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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